대표적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깜짝 발언을 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습니다. 약정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약 8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언론에서는 이를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적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란 ‘Philanthropy(자선·박애)’와 ‘Capitalism(자본주의)’의 합성어로,  약 10년 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숀 파커 냅스터 창업자, 투자가 워런 버핏과 같은 신흥 부호들의 기부를 설명하는 용어로 주로 쓰입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는 전통적 방식의 자선이 아니라 게이츠재단이 주로 에이즈와 마약 중독 퇴치를 위해 활동하는 것처럼 특정 가치의 실현을 위해 돈을 내놓는 적극적인 사회 개입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저커버그는 ‘인류 잠재력의 진보’와 ‘평등성 증진’을 앞으로 펼칠 공익사업의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무조건 기부하는 게 아니라 돈이 쓰이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부 행위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은 국내 최대의 장학재단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재단에서는 해외 대학·대학원의 한국 학생 300여 명에게 100억원 가까운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단의 해외 장학생으로 문과 계열 학생이 뽑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원칙적으로 경제학 전공자를 제외하고 문과 학생에게는 지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일반적인 장학금과는 달리 이 장학금은 집안 형편이 선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가정 형편보다는 소속 학교가 어느 정도의 명문이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아이비리그나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대학에서 자연과학이나 공학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 장학 사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장학 사업은 8000억원 규모의 교육재단을 만든 이종환(91세)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돈이 쓰이는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장학사업은 자선자본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한국이 먹고 살 길은 과학기술에 있다. 우리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요즘 서구 언론들은 이런 자선자본주의가 정당한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민주적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세워야 할 사회적 이슈를 개인이 돈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으냐가 토론의 핵심입니다. 

대기업은 물론 젊은 IT(정보기술) 신흥 부호들마저도 자산 증식과 사업 확장에 골몰하는 모습을 줄곧 봐온 우리들에게는 낯설고 부러운 풍경입니다. 언제쯤 우리나라에서도 자선자본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가들이 낯설지 않은 때가 올까요?

자선자본주의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그 진심은 이미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재산보다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저커버그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에도 넘쳐나기를 바래봅니다. 

글 엄판도(전 경향신문 기자, 라이나전성기재단 언론재능나눔단)